디자이너
영혼을 뜻하는 단어‘anima’에서 만화에 영혼을 불어넣어서 움직이게 하는 예술, 즉 ‘animation’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요즘은 디자인이 물건에 영혼을 불어 넣는다고들 말한다. 우리는 흔히 디자이너를 ‘예쁜 물건을 만드는 사람’으로 여기지만 원래 의미는 훨씬 더 방대하다.
세계 최초로 이 단어를 직업명으로 쓴 사람은, 약 600년 전 이탈리아의 파도바라는 시골에서 작고 허름한 가구점을 운영한 ‘스콰르치오네’였다. 그는 고객들의 동향을 살피다 가구 구매에 돈을 쓰는 사람들은 좋은 재질로 만든 것보다 “와 신기하다”라고 칭찬할 만한 기발한 상품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의자를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눈에 번쩍 띄도록 멋지게 만드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는 이점에 착안해 자신이 가구 제작을 할 것이 아니라, 가구의 모양, 색상, 재질을 그림으로 표시해 주고, 기술자들에게 하청을 주어 제작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손짓 발짓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을 ‘sign’을 보낸다고 한다. 스콰르치오네 역시 원하는 가구 모양만 그림으로 표시, 즉 sign을 해서 기술자들에게 넘겼다. 그래서 ‘디-사인’ 즉 ‘design’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미대 준비생들이 열심히 그려야 하는 밑그림을 뜻하는 ‘데생’(dessin)도 여기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