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나무들」
사는 일이 힘에 겨워 어디론가 도망을 가고 싶어지는 때면, 나는 팔배개를 하고 누워 인도를 생각한다. 어포이트먼트가 필요없다는 나라, 공작새가 깃을 벌리고 아스팔트 위를 유유히 걸어다니고, 아직도 쇠똥을 연료로 쓰는 여인들이 사는 고장, 그 태고와 현대가 뒤죽박죽으로 뒤 섞여 있는 나라는 이상하게도 첫눈에 나를 매혹시켰다.
장엄한 거목들이 우뚝우뚝 솟아 밑둥이 안개에 가려져 있어 마치 수면에 뜬 섬 같은 인상을 주었던, 그 나무 그늘 아래 누우면 무사의 정밀경에 도달할 것 같은 마음이 저절로 솟게 하는 신비한 나무들을 만나는 인도. 인도의 나무는 수종과 연륨을 가리지 않고 여름이면 모두가 꽃을 피운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계절은 바로 인도의 지옥이라는 것이다. 나무마다 꽃을 매달게 하는 그 원동력은 다름 아닌 인도의 살인적인 더위 때문이란다. 더위 때문에 해충이 모조리 죽어버리는 그 끔찍한 인도의 여름. 인간의 생존인들 얼마나 고달팠을까? 꽃으로 뒤덮이는 인도에 대한 나의 황홀한 꿈은 산산히 부서졌다.
그랬는데 세월이 흐르자 내가 아는 인도는 날씨가 청명하고 쾌적한 어느 여름의 뉴델리와 타지마할 밖에 없다. 얻어들은 더위의 무서움에 대한 얘기는 사라지고 내게 있어서 인도는 아직도시원한 것이고, 푸르름 속에서 여전히 신비롭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강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