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문」
거리에 나가 보면 모든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걸어도 될 거리를 자동차를 타고 가고, 계단을 두고도 에스켈레이터를 사용한다. 나는 워낙 상황에 대한 판단이 느리고 운동 신경이 둔하다보니 빠르게 움직이는 기계 종류는 모두 경계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백화점에 있는 에스켈레이터를 딸 때에도 조심스럽고 두려워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면서 발을 올린다. 어쩌다가 양손에 쇼핑백이라도 들고 하행 에스켈레이터를 탈 때는 정말 난감하다. 발을 헛딛어 아래로 곤두박질쳐버릴 것만 같아 온몸의 신경이 발끝에만 가 있게 된다.
무엇보다 나를 곤란하게 하는 것은 빌딩 입구에 설치된 회전 유리문 앞에서다. 옆에 출입문을 두고도 왜 굳이 회전문이 있어야 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회전문 앞에서 항상 긴장한다. 마치 어릴 때 줄넘기 놀이를 하면서 그 회전하는 반원 속에 뛰어들 때처럼. 그때 정확한 투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결단을 반복했던가.
살아가면서 나에게 부딪쳐오는 일들 앞에서도 회전문 앞에서처럼 망설이고 미룰때가 많다. ‘이번에는 꼭’ 하면서도 유리문이 몇 개나 빙빙 돌며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때로는 살아간다는 것이, 정지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빙글빙글 도는 유리문 앞에서처럼 현기증과 당혹감을 줄 때가 많다. 그러다가 회전문에 떠밀리듯이 이 세상에서 밀려날 때가 오지 않겠는가. 자동차를 타고,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그렇게 바쁘게 서두르지 않아도 그때는 어김없이 찾아오리라.
- 염정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