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이 불편합니다」
몇 년 전 한 배우가 무대인사에서 짝다리를 짚고 손톱을 만져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전체 영상을 보면 그런 행동을 한 건 아주 잠깐이었고, 다른 배우들 역시 편안한 분위기에서 무대 인사를 했다. 그럼에도 태도 논란은 ’선배들도 있는데 예의가 없다‘ ’거만해졌다‘ 등 인성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만약 그 나이 때의 내가 영상으로 남았다면 아마도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았을까. 3초간의 모습으로 인성까지 검증해내는 프로불편러들의 야박함과 엄격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런 불편러들의 불편함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까?
사소한 행동에도 쏟아지는 불특정 다수의 비난과 지적을 보다 보면 내가 그 대상이 아닐지라도 불안해 진다. 한 순간에 손절의 대상이 되고 배척당하며 비난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내면화하고, 자기검열과 눈치보기를 반복하게 된다.
물론 문제가 있을 때 불편함을 말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개선을 위해서 그런 불편함은 익숙했던 문제들을 개선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고정된 자신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쏟아내는 비난은, 그저 한순간의 통쾌함을 바라는 폭력이자 예의,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억압이다. 그러니 우리 서로 좀 내버려 두자. 조금 달라도, 실수해도, 부족해도 그냥 지나가자. 그래야 나 자신도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