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정답에 굴하지 않을 것
동네 커피숍에서 우연히 초등학교 원어민 강사인 캐나다인과 대회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내게 우리나라에 와서 이상하게 느낀 점을 이야기했는데 한국 사람들은 Smart student를 Good student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공부를 못해도 Good student일 수 있고, 공부를 잘해도 Good student가 아닐 수 있는데 말이다.
‘잘 산다’의 의미 역시 비슷한 맥락을 갖는다. ‘잘 산다’고 할 수 있는 요소에는 경제적인 기반 외에도 건강한 신체와 좋은 인간관계, 삶의 철학과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심미안, 그리고 일을 통해 느끼는 보람 등 다양한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잘 사는 것이란 오직 부자인 삶의 의미로만 이야기된다.
아마도 ‘6.25’와 반공 이데올로기가 거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더는 침략당하지 않고, 절망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6.25 심성은 두발단속과 통금시간이라는 군대식 문화와 획일화된 통제를 따르게 했고, 반공 이데올로기는 다른 답을 논하는 것 자체를 불순하게 만들었다.
집단이 강요하는 한 가지 방식과 한 가지 답을 견뎌온 것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했던 우리의 생존방식이었던 것이다. 그결과 우리에겐 정답이 된 소수의 오만과 오답이 된 다수의 열패감으로 응축된 병적인 사회가 된 것이다. 좋은 학생에는 여러 정의가 있고, 잘 사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으며 우리는 각자의 답을 가질 권리가 있다. 우리는 오답이 아닌, 각기 다른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