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외엔 무엇도 되지 않을 것
초등학교 2학년 때, 장래희망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퀴리 부인에 대해 어디선가 주워듣고는 퀴리 부인과 같은 여성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실상 나는 과학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초등학교 2학년의 나는 그런 공수표를 남발해도 괜찮았다.
아홉 살짜리 꼬마가 구체적으로 물류회사에서 구매를 담당하고 싶다거나 중견회사에서 회계관리를 하고 싶다고 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나이를 먹어서도 우리의 꿈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리라 ‘무엇이 될 것인가’에 머물러 있을 때 발생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실제론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면 왜 행복하지 않을까?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 주변사람들의 안정을 따르며, 자신의 내면은 바라보지 못하면서 내면을 공허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직업이란 보다 자기다워지는 일이지, 없는 자아를 창조하는 일은 아니다. 내면은 돌보지 못하고 외면의 가치만을 취하는 한 언제나 비교 속에서 살 뿐, 결코 진짜 행복과 자존에는 닿을 수 없으니, 우리게 절실한 건 나를 증명할 명암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