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추억
그땐 대서방이 있었다. 주로 공문서나 어려운 행정서식을 대필해 주는 곳이었는데, 남을 대신해 서류나 편지 따위를 써 주고 돈을 받는 분들이 간혹 결석계를 대신 써주거나 성적표를 고쳐주기도 했다. 우린 그곳에서 가짜 가정 통신문을 만들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친구들과 피서 여행한 번 못 가본 억울함이랄까. 버젓이 ‘MT 공지서’를 만들어 떡 허니 엄마에게 내밀었다. 약간 당황하시던 어머니. 그래도 어쩌랴 학교에서 단체로 간다는데ㅋㅋ. 간도 컸다. 이번에야 말로 바다엘 가리라. 벌써 파도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기차 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네 커플은 끝내 허락을 받지 못했다. 덕분에 우린 둘이 되었다. 어색하고 마구 떨렀다. “그만 가지 말까. 아니 어떻게 얻어낸 여행인데.” 망설임은 잠시, 우린 용기있게 기차에 올랐다. “잘됐지 뭐. 대신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됨! 알겠지?”
그날의 대천 해수욕장은 너무 아름다웠다. 겨우 얻은 민박집에서 내려다보는 비내리던 해변은 밤에도 눈이 부셨다. 우린 정말 아무일도 없었다. 그래서 여행이야기를 자랑삼아 떠들고 다녔다. 친구들은 믿을 수 없다며 손사레를 쳤지만, 내 인생의 첫 여름, 돌아갈 수 없는 바닷가의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