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겁니다. 고등학교 시절, 모처럼 단축 수업을 한 덕분에 우리 몇몇은 뽑기를 해서 당첨된 친구네 집으로 무작정 버스를 탔습니다. 시끌시끌하게 버스 뒷자석을 점렁했지만 종점까지 가느라 우리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하필이면 그리 먼 곳에 살줄이야... 투덜대며 다닿은 친구네 집은 그러나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넓은 마당에 시원한 펌프가 있는, 꽃밭에 평상까지 그야말로 홈 스윗트 홈입니다. 거기에 이모님이 내주신 라면과 만두,
식혜도 마셔가며 녀석의 방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큰 전축, 친구는 자랑스레 LP판을 골랐습니다. 산울림, 우리 시대 최고의 센세이션을 불러온 밴드, 그때 흘러나온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곁눈질로 훔쳐보던 여동생의 얼굴과 함께 두고 두고 기억나는 그때 그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