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전체」
며칠 전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감히 더위를 힘들어하는 체질 때문에 열대지방을 여행할 엄두를 못냈는데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평소 편하게 지내는 이들이 일행이 된다기에 따라나섰다. 늙어갈수록 여행에 대한 매혹도 현저하게 감퇴하는 걸 느꼈다. 집 떠나자마자 집에 갈 날만 꼽고 있는, 호기심보다는 무사안일 쪽으로 기울게 되는 스스로로 동정받아 싼 나이다.
운좋게도 캄보디아 역사와 문화에 사로잡힌 가이드를 만났다. 도처에 열대식물이 우거지고 색 짙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가운데 유독 ‘부겐빌레아’가 눈에 띄었다. 가이드는 이 꽃을 향기가 없을뿐더러 사계절 피고 지는 걸 멈추지 않아 언제 어디서나 줄창 볼 수 있어서 지겨운 꽃이라 했다.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하는 말처럼 안타까움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지겹고 볼품없는 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내 눈에는 어찌나 의젓하고 아름다워 보이는지 저거야 말로 나무의 진면목이구나 싶은 짜릿한 감동을 맛보았다.
저 나무가 하루도 지는 일 없이 변화무쌍한 날을 버틴 그 나무일까. 만개했을 때는 온 동네를 바람나게 할 것처럼, 미풍에도 오묘하게 살랑이던 무성하고 예민한 잎새들, 느릿느릿 물들다가 우수수 서들러 지던 그 꽃나무는 이제 한 점 흐트러짐도 흔들림도 없다. 나도 그 꽃을 닮고 싶다.
- 박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