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스
내가 처음 기타를 손에 잡은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봄 소풍을 갔는데, 아니 이런! 평소에그야말로 밥만 먹으러 학교에 오는 것 같았던 내 짝이 현란한 손 놀림으로 기타를 능숙하게 연주하는 게 아닌가. 나는 완존히 마음을 뺏앗기고 말았다.
라디오에서 듣기만 하던 곡을 자유자재로 치는 걸 본 그날, 나는 자존심이고 뭐고 할 것 없이 그 친구에게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매달렸다. 돌아오던 버스안에서 간단한 설명과 함께 몇 개의 코드를 배우고, 기어코 가로채듯 그얘 기타를 빌려오는데 성공했다.
그날부터 시끄럽다는 어머니의 핀잔을 무시하고 손 끝에 물집이 생길때까지 코드를 잡으라는 위대한 내짝의 지도와 편달에 기꺼이 순응했다. 왼손가락에 굳은 날이 베길 정도가 될 무렵, 나는 가장 쉽다는 이곡을 마치 산을 정복한 사람처럼 근엄하게 칠 수 있었다.
로망스... 소리는 여전히 어색했지만 열흘만에 배운 기타 연주곡, 밤이면 창틀에 걸터 앉아 흥얼거리던 나에게 궁상떨지 말라던 누나들의 그 소리도 이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