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을 놓아주는 용기」
놓을 수 없는 어떤 사람을 놓아주어야만 할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어렸고, 게다가 나는 절대 어리지 않다고 스스로 믿었기에 더욱 어리석었다. 휘몰아치는 감정과 내홍한 현실의 간극을 조절하는 법을 몰랐다. 이성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 숙취처럼 덮쳐오는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절대 전화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저녁엔 엄마잃은 어린아이처럼 전화를 찾았다.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기다림과 희망없는 설렘을 멈추지 못했다. 헤어지지 말자고 매달릴 용기도 영원한 작별을 고할 용기도 없었다.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마다 폭격 맞은 건물처럼 허물어졌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이 아픔의 시간을 새삼 떠올리게 만든 것은 릴케의 문장이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벗을 위한 레퀴엠>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사랑하는 이들이 연습할 것은 하나뿐이라고. 그것은 서로를 놓아주는 일이라고. 그때 이 문장을 봤다면 그때 이 시를 알았더라면 나는 좀 더 힘을 내어 용감하게 그를 보내주지 않았을까.
다행히 이제는 안다.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이별의 체험, 그리고 수많은 문학작품의 힘을 빌려 어렵게 깨친 진실이다. 나는 이제야 안다. 나를 파괴하지 않고 누군가를 온전히 놓아주는 법을. 오늘이 마지막인 곳처럼 사랑하고, 그 아픈 ᄉᆞᆼ을 간직한 채 당신을 놓아주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