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싸우는 법을 배울 것
나는 친언니와 사이가 좋은 편인데, 그럼에도 거끔은 다툴 때가 있다. 하지만 20여 년의 세월에서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설명하고 화해하는 법을 채득했다. 그런데 써움 자체가 싫다는 부모님은 종종 중재자로 나서서 갈등을 억지로 봉쇄하려 했다. 억압에 따른 침묵일지라도 겉보기에 조용한 것이 부모님 세대가 말하는 평화였다.
우리 사회는 의견 충돌을 싸움질이라 여기며 질색하고 복종과 순응을 요구했다. 그래서 모난 돌은 맞지않기 위해 무뎌져야 했고, 중간이라도 가기 위해선 가만히 있어야 했다. 그 결과, 감정을 억압한 가짜 화합 속에서 개인은 병들고 관계는 곪아갔다.
그러나 파업도 쟁의도 토론도 없는 사회, 단일한 가치를 다같이 추구하는 사회는 북한 밖에 없지 않은가? 억압으로 화합돤 사회는 결토 건강할 수 없다. 문제는 갈등이나 국론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싸우지 못해 문제의 해결책과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데 있다.
만약 내가 사는 이곳이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단순히 어깃장을 넣는 독선과 싸움으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에서 벗어나 해결책을 찾기 위한 싸움의 방법을 채득해야 한다. 비난이 아닌 대안이 필요하며, 묘옥이 아닌 설득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맨날 싸워서가 아니라 제대로 싸우지 못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