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크리스마스 때 담임 선생님 댁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때가 때 인만큼 빈손으로 사는 것도 뭐해서, 작은 국화 화분을 샀습니다. 케이크나 술을 사들고 가는 것보다 잘했다는 생각에 발길이 가벼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댁을 찾아 헤매는 동안, 몸은 동태가 다 될 지경이었습니다. 겨우 찾아 뵈었을 때 “밖이 꽤 춥지? 어서 올라와 몸 좀 녹여라” 아랫목에 깔아 놓은 이불로 두 다리를 덮어주시며, 선생님이 화분이 좋구나 하셔서, 마음속으로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화분을 사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화분을 내려다 보는 순간, 무안해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집을 찾느라 헤매는 동안 얼었던 국화도 몸을 녹이느라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날의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빙그레 웃게 됩니다. 궁리 끝에 고른 선물, 하지만 막상 전해줄 때 보면, 잘못 고른 선물인 게 드러나서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주고받는 마음의 선물이 있어서 따뜻합니다. 그 시절에 열렬히 들었던 정태춘의 '촛불' 신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