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친절하지 않는 사람에게
대학을 갓 졸업하고, 한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내가 처음으로 배정된 팀에서 만난 주임은 나를 하인처럼 대했다고 할까? 자기 모니터를 10cm 옮기는 것도 나를 시켰고, 사소한 실수만 해도 “나 엿 먹여?”라며 면박을 줬다. 사회생활이 처음이었고, 모든 게 평가 대상이었던 인턴 신분인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건, 그녀가 나에게 한 행동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표정 한 번 구기지 않은 나 자신이었다. 대단한 권력이라도 지닌 듯 구는 그녀에게 나는 단 한번도 꿈틀하지 못했고, 그런 나의 태도는 그녀가 나를 점점 더 하대하게 만들었다.
좀 다른 경우지만 민주화 운동을 하다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이 과거를 떠올릴 때, 가장 괴로운 건 그때 겪은 고통이 아니라 고문관에게 잘 보이려 했던 자신의 비굴함이라 했다지? 부당한 대우 자체보다 부당한 대우에 굴복한 자기자신인 거다.
그러니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은 이에게,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이에게, 친절하려 애쓰지 말자.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에겐 최소한의 저항이 필요하다. 상황을 바꿀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들에게 비굴해지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