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청정의 가을에」
눈물처럼 슬픈 가을이 온다. 바람으로 먼저 오는 가을. 가을은 하늘에서 온다. 그리하여 우리의 눈을 맑게 하고, 영혼을 슬프게 울리고, 끝 모를 시간 앞에 우리를 무릎 꿇게 한다. 달이 밝은 가을밤 창가에 서면 목까지 차오르는 그리움, 그것이 가을의 얼굴인가, 가을의 손짓인가.
가을은 태고로부터 그런 계절이며, 사람들은 가을의 긴 밤을 통해서 생각하는 깊이를 더했고 학문을 연마했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가을의 슬프고 애달픈 정서는 감상으로서가 아니고 우리들에게 많은 일깨움을 주기도 한다.
팔십 인생을 산 노인이 플라타너스 넓은 잎이 떨어져 내리는 걸 보며 느끼는 삶의 허무와 고독은, 소녀가 느끼는 뜻 모를 서글픔과 그리움과 그 농도나 깊이가 다를 뿐 감정의 흐름은 동일한 것이리라.
가을은 거두어들이는 계절이다. 지나치게 탐욕하거나 자만할지 몰라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진한 허무감을 느끼게 하는 정서를 함께 보내준 것이리라. 마음은 또 지향 없는 길을 떠나 먼 하늘가를 헤매이리라. 일상을 잠시 벗어나 가득가득 담겨오는 가을 하늘의 싱싱한 호흡을 마음껏 내 것으로 하자. 그리하면 이 인생의 어렵고 어리석은 일들은 저절로 사라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