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잎」
누런 낙엽이 온 산을 뒤덮고 있다. 등성이와 골짜기, 언덕 저 멀리까지. 두어 달 전만 해도 울창하던 숲이었건만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바람 한 점 없는 하오, 갈잎을 보며 갈잎을 밟으며 오솔길을 천천히 걷는다. 갈잎들은 지난 여름 나무에 매달려 그 많은 거센 비바람의 휘둘림으로부터 이제야 평안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 듯하다.
나도 이 산에 막 들어설 때의 스산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차분하고 편안해진다. 번거롭고 어지러운 그 세계에서 벗어나 조용한 내 자리로 되돌아온 것 같다. 갈잎들은 책갈피에 넣었던 것처럼 납작한 것은 없다. 대롱처럼 말린 것도 있지만 거의가 가슴을 오긋이 오므리거나 허리를 굽히고 서로 몸을 의지하고 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잠자코 내려다본다. 어떤 이에게는 낙엽이란 늙고 병들어 버림받은 것이다. 혹은 꿈의 껍질이다 하며 슬퍼한다. 하기야 길 위에 떨어져 밟히기도 하고 구르다 미끄러지다 어디론지 날아가버리던 낙엽,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라볼수록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고단한 긴 여행으로부터 허물없고 편안한 내 본래의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서 있자니 다람쥐 한 마리가 도토리를 물고 갈잎 속으로 숨는다. 멧새 한 마리가 이쪽저쪽 나지막한 나뭇가지로 날며 갈잎들을 들여다본다. 아마 오늘 밤 잠자리를 찾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