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참으면 끝나는 일은 없어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당시, 업계에서는 작업물의 가격을 책정하는 게 워낙 제각각이었다. 예를 들어 로고 디자인 작업이라면, 몇만 원 수준에서 몇천 만 원까지 다양했다. 가끔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칠 금액으로 의뢰가 들어어기도 하고, 무제한 이용권이라 생각하는지 추가 작업을 계속해서 요구받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이렇게라도 돈을 벌어야 낫지 않을까 싶다가도, 아직 굶어 죽진 않겠다 싶으면, 거절하기도 했다. 더 절박한 누군가는 그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겠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은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무리한 요구라고 당당하지만 정중하게 말했다.
내가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게 되면, 상대는 무리한 요구를 가능한 요구였다고 생각하게 되고, “지난번에 사람은 해줬는데” “지난번에 사람은 괜찮다고 했는데” 라고 말하며, 더 당당히 부당한 요구를 하게 된다. 그건 결국 시장 전체를 망치게 하고, 피해를 다른 사람과 나눠 갖게 한다.
내가 한 번 참고 넘어가 버려서 모두가 참아야 하게 되는 거다. 그래서 선의는 신중해야 한다. 개인의 선의가 꼭 전체의 선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광장에 모여 손을 맞잡는 것만이 연대가 아니다. 때론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게 최선의 선의이자, 연대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