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뛰어 넘는 존재」
상황이 바뀌면 존재 자체를 못 알아보는 인간의 취약성은, 오래된 동화 <신델렐라>에도 등장한다. 계모의 부당한 대우와 일상적인 모욕을 받으며 묵묵히 허드렛일을 할 때 신델렐라는 빛나 보이기는커녕 초라하고 힘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화려한 옷을 입고 눈부신 모습으로 나타나자 계모와 두 딸마저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저 아름다운 숙녀가 설마 그들이 매일 부리며 괴롭히는 신델렐라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회장에서 신데렐라에게 푹 빠진 왕자도 상황이 바뀌자 운명의 짝을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어린시절 이 동화를 읽고 왕자에 대해 매우 실망했었다.
드레스 좀 걸쳐 입었다고 얼씨구나 좋아하던 그가 얼굴조차 못 알아보다니 진짜 사랑이면 상대가 고통받고 있을 때 가장 먼저 그 아픔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드레스 좀 못 입었다고 못 알아보는 왕자의 얄팍한 마음, 하지만 상황을 벗어나서는 존재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들이 되풀이되는 현실에 적응한 어른이 되고 나니, 왕자의 어리석임이 이해되었다.
돈으로 매길 수 있는 가치에 연연하면서 생명이 내 품는 위대함을 포착하지 못하는 현대인들. 우리는 상황의 마법에 걸려 존재의 가치를 끝내 발견하지 못하는 오랜 습성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하지 않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존재의 불꽃을 간직한 사람, 그런 위대한 사람들의 향기로운 투쟁을 나는 매일매일 문학의 공간에서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