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쓰기」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있다. 피터르 엘링가의 그림 <책읽는 여인>이 그렇다. 무려 370년 전 작품인데도 마치 손에 잡힐 듯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신발을 뒤로 하고 책 읽기에 집중하는 여성의 ‘홀로 있음’이 이 그림을 더욱 빛낸다.
그림 속 여인은 마치 온 세상과 함께하는 듯한 기쁨을 주는 경이로운 사물, 그것이 바로 책이기에. 창문으로 밀려드는 햇살은 바깥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듯하다. 전깃불이 없던 시절, 저 햇살 속 여인의 자세는 굳이 앞모습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 표정을 능히 짐작하게 한다.
그림 속 자그마한 책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나는 영혼의 빈곤을 벗어났다. 이야기에 깊이 몰입할수록 나는 일상의 수많은 고통을 잊었다. 돗서, 그것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마침내 더 커다란 현실과의 만남이었다. 좋은 책은 다시 현실의 바다로 헤엄쳐 나갈 용기를 주는 눈부신 구명보트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삶은 어떨까. 그것은 ‘읽기와 쓰기’라는 단순한 몸짓에 깃들어 있다. 두려움보다 강하고, 더욱 아름답고, 더욱 열정적으로 여전히 읽고 씀으로써 생각을 전달하고 소통하는 목마름이 있는 한 이야기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읽고 쓰기, 이것은 인류의 멈추지 않는 생존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