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절규할 때 우리는 듣지 못했다」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외면한다. 고통받는 이가 제대로 말할 수없으면 표정으로, 눈으로, 몸짓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표현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듣지 못한다.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을 듣고 곤란하지 않은 정보만 섭취하는 사람들은 아픔을 공기처럼 들어 마시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곤경에 무심하다.
오랫동안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인간에게는 ‘필사적 외면’아라는 본능이 있다는 것을, ‘의도적 냉혹’이라는 본능도 있다. 그도 모자라 타인이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자기보다 약한이들을 상습적으로 학대하고, 누군가가 괴로워하는 것을 엿보며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언제든 괴롭히기 좋은 다른 타겟을 찾는다. 문학은 크게 두가지 방법으로 인간의 어두운 본능에 대처한다. 타인의 인격을 파괴하는 인간의 어두운 본능을 낱낱이 폭로하거나 그들과 싸우는 전사들을 옹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선명한 폭로나 옹호의 길 외에도 아파하는 그들 곁에 가만히 함께 있어주는 길이 있다.
지금 당장 바꿀수는 없을 지라도 다만 그들 곁에 함께 있는 것, 나는 문학의 힘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종교의 힘도, 가족의 힘도, 사랑의 힘도 빌릴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 나는 문학이 지닌 ‘곁에 있어주기’의 힘으로 버틴 나날이 많았다. 곁을 떠나지 않는 용기. 그것은 단지 작가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