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단지 동화가 아니랍니다」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힘은 무엇일까. 그 힘을 수많은 단어 중에서 고르라면 나는 ‘자비’를 선택하고 싶다. 자비의 핵심은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강렬한 의지다. 자비는 뜻밖의 장소에서 기적처럼 나타나기도 하지만, 간절히 필요한 시간에 전혀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내가 자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은 오스카 외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통해서다. 동상이 된 왕자는 제비에게 손과 발이 되어주기를 부탁한다. 배고픈 아이에게 물밖에는 먹일 것이 없는 가여운 엄마에게 칼자루에 박힌 루비를 선물해 달라고.
간절한 부탁을 저절할 수 없는 마음, 그 마음이 제비의 발목을 잡는다.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려했던 제비는 추위도 다급함도 잊어버리고 자신과 전혀 상관없던 이들의 목숨을 구하고 정작 자신은 쇠약해진다. 제비가 타인을 향한 난데없는 사랑의 기쁨을 깨닫는 장면은 언제 다시 읽어도 뭉클하다.
지상의 모든 슬픔에는 사각지대가 있다. 아무리 꼼꼼히 씻어도 닦이지 않는 눈물이 있다. 문학은 바로 슬픔의 사각지대를 햇빛이 쏟아지는 세상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자비는 왕자에게서 제비에게로 아름답게 전염된다. 결코 낫지 않고 싶은 마음의 질병, 자비. 그것이 문학이 내게 가르쳐준 자비의 찬란한 빛이다.